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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물

조동진 죽다

괴벽 2017. 8. 28. 09:32

1979년에 데뷔한 조동진 씨가

오늘 작고했다고 합니다.








포크계의 제왕이라고 불리던

그는 따스한 음색을 지닌 가수였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시적인 노래를 밥 딜런처럼

부른다는 소리와 사람을 고요하게 만드는

힘이 목소리에 있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고 조동진 씨는 9월에 시작되는

공연을 위해 연습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행복한 사람으로 데뷔한 그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주최했고, '포크계 대부'라는 소리를 팬들로부터

들어왔습니다.



고인은 방광암 4기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투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67년, 재즈 밴드인

쉐그린에서 기타를 쳤었고 최근에 신곡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음악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는 기타를 들고서

국내 음악 역사에 기록될만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엄숙합니다.



'삼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동진... 믿어지지 않는.'



'오늘은 계속 님의 노래를 들을게요.'









'제비꽃 나뭇잎 사이로.'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조긍하였고

영화감독이었습니다.



푸른곰팡이 대표인 동시에 고 조동진 씨의 동생인

가수 조동희 씨는 그의 병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에게 '당황하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 잡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적어보겠습니다.



그는 1980년부터 1990년대까지 메인스트림이 아닌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선들로부터 '대부'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 뮤지션들이 파격적이거나 저항적인 노랫말을

썼다면 그는 정적이고 서정적이며 자연을 예찬하는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장필순, 들국화, 시인과 촌장를 비롯한 매우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그가 이끈 '동아 기획'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었습니다.



1990년대에, 동생 조동익, 장필순, 박용진과 '하나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고 조동진 씨는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꿈의 작업 2017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공연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기리는 후배들이 대신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가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본 여러 세상이 담긴

기타 치는 그의 앨범을 들으며 자라온 사람들은 크게 슬퍼할 것입니다.


그의 1집인 '행복한 사람'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팬들은 그의 노래를 두고 '자연을 닮은 노래'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가 주최한 '유재하 경연 대회'에서 우리는

좋은 가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팬들의 반응을 올리고 마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셨네요. 어제 당신의 노래를

새벽에 듣고 있었습니다. 정말 좋더라고요.'


'선생님. 언제 한번 찾아뵐 것을.'


'조동진이 국격을 올리듯이 한국 음악계의 품격을 올렸지.'


'밥 딜런, 밥 딜런? 밥 딜런보다 낫다고 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가 존경했던 사람들은 다 죽어버리는구나.

존경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 술이나 먹으러

간다.'








'명복을 빕니다. 위에서도 세상을 노래해 주시기를...'


'선생님.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햇빛이 생각났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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